문학동네 시인선은 빨강, 파랑 원색과 네온빛 가득한 핑크와 연두까지 온갖 빛깔로 표지들을 수놓고 있다. 시집을 출간하며 누군가는 그 시집 표지의 채울 단 하나의 바탕색을 고심해야만 했을 것이다. 다른 시집과의 디자인적 차별성뿐만 아니라 시집의 내용까지 아우르는 색상이어만 하기에. 이향 시인의 시집은 검다. 그의 제목은 희다 . 온통 검은색으로 보여지는데 희다 한다. 모든 빛이 섞이면 희고, 모든 색이 섞이면 검다. 비밀 아닌 이 이야기를 믿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 검고 흰 시집을 읽었다.———--라일락 꽃잎 술렁이는그 그늘을 사랑했네버스를 놓치고가버린 저녁을 기다리고눌린 돼지머리 같은 달을 씹으며어둠을 토해내던.그 그늘을 사랑했네오지도 않을 그림자를 밟고두려움 많은 눈으로 밤을 더듬으며숨어 연애하던,그 그늘을 사랑했네저 혼자 배불러오는 봄을 향해입덧을 하고, 쏟아지는 소낙비에 젖어내 안에 그늘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그늘을 사랑했네언젠가는 같이 늙어갈 거라고슬그머니 내 허벅지를 베고 눕던, 그 그늘을사랑했네
부끄러움은 퇴화도 참 빠르게 오는구나
잃어버린 목탑을 세우는 마음으로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탑
200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새들은 북국으로 날아간다를 발표하며 시단에 나온 이향 시인의 첫 시집 [희다]가 출간되었다. 시인이 첫 시집 [희다]를 출간하기까지 걸린 11년의 시간을 두고, 길다거나 짧다고 간단히 평하기는 그래서 쉽지 않다. 다만 잃어버린 목탑을 세우는 마음으로 한 층 한 층 탑을 쌓아올리고 싶 었다는 시인의 다짐이 [희다]라는 견고한 결실을 맺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수많은 이질적 가치, 현상, 사물 들은 이향의 시세계 안에서 화해를 이룬 채 공존한다. 한 층 한 층 탑을 쌓아올리 는 시인의 마음이 반영되어서일까, 대립하고 충돌하고 반목할 법한 언어들이 [희다] 안에서만큼은 이질감 없이 어울린다. 이향의 시를 읽다보면 시인이 쌓아올리겠다는 탑이 ‘말로(言) 지은 절(寺)’이라는 시(詩) 본래의 정신 그대로였음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
1부 끼고 있던 반지를 벗었다
목단
사과
목련
반지
밤의 그늘
독백
웃음
새끼손가락
라일락 꽃잎 술렁이는
기념일
의자
흔적
한사람
슬픔은 잠시 벗어둔 모자쯤으로 알았는데
두통
소
극장 화장실
시
2부 흰 붕대를 다 풀 수는 없어
붉은 소문
식육점
비늘
무덤
모과
입술
그곳
이웃집 남자
산수유
사막에서
노파
경계
슬픔에도 허기가 있다
비눗방울이 앉았던 자리
젊은 남자
소리 아는 여자
가야산?예리사람들
개들은 여섯시를 기다린다
일출
3부 세상의 모든 소리는 강으로 갔다
한순간
노인들
식탁
패밀리
금방 터지고 말 실밥처럼
같이 가지 못해 미안해요
장례식
무슨 사연이기에
끈
새벽미사
이력서
낮잠
그래요, 강이 너무 크군요
우체국 가는 길
감포
둘째
44호
노을
저녁
침대는 한 번도 누운 적이 없다
욕조
희다
해설|그녀 몸에 가려진 그늘의 바림에 나는 쓰네
|양경언(문학평론가)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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