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 쪽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표지석이 있었는데, 그곳이 조선시대 사역원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적이었다. 사역원은 역관, 요즘으로 치면 통역사를 양성하는 관청이 있었던 곳인데, 조금 더 살펴보면 부근에 다른 관청터도 찾을 수 있다. 노비문서를 관리했던 장예원터도 세종문화회관 뒷 쪽에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남문인 광화문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그 거리는 그야말로 관청가였던 것이다. 이른바 육조거리, 그러니 관청이 즐비했던 곳이고 경복궁과 육조거리는 권력의 중심지로서 한양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양이 곧 조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종문화 회관과 세종대왕 동상, 정부 종합청사, 광장, 교보문고..지금의 광화문 일대를 머리 속에 그리며 한양의 탄생 을 읽어가니 훨씬 실감이 났다고 할까. 600년 도읍지 한양의 Before After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 했다. 한양의 탄생 은 어떻게 보면 한양보다는 조선의 관료체제가 얼마나 체계적인지, 왕조국가였음에도 실질적으로는 사대부 관료들에 의해 조선이 운영됐음을 증명하는 듯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관청은 의정부 , 비변사 , 육조 , 규장각 , 봉상시 , 교서관 , 내의원 , 상의원 , 장악원 , 관상감 , 사역원 , 도화서 이다. 이 중 임금의 의복과 궁중의 재화를 보관하는 상의원 은 얼마전 영화의 소재로도 다루어진 곳이고, 내의원 , 도화서 , 규장각 도 사극이나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관청이고. 교서관 은 서적을 인쇄, 반포하는 역할을 맡은 곳이고 장악원 은 왕실의 음악을 총괄하는 관청이다. 위의 관청 중에서는 대중들에게 가장 생소한 곳이 봉상시 즉 국가에서 행하는 제사와 죽은 이에게 시호 내리는 일을 담당한 곳일 것이다. 의정부 나 비변사 처럼 정책 결정관청과 6조 같은 집행관청, 그리고 실무작업을 하는 관청의 운영방식을 보면 500여년 이상 조선이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는지를 간파하게 된다. 조선의 관청 조직과 그 운영은 상당히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의 정부조직보다 짜임새나 효율성에서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지 5개월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내각구성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래도 현대에서는 수장들 임명 절차도 복잡하고, 조직 규모가 방대해지다보니 결정과정도 늦어지는 비효율성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에는 한양의 관청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지 않았을까 의구심을 갖기도 했었는데, 경국대전에 관청의 업무나 품계, 관장자,직제 등 세밀하게 규정이 마련돼있고, 분담체계나 구성원 선발방식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관청 특성상 과중하게 업무가 몰리는 곳 근무자는 과로에 시달리는 등 관청간에 업무량이 균질하게 배정되지 못하고, 승진이나 업무에 있어서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한계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조선의 관청 운영체제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었다. 결정기관과 집행관청의 수뇌부는 조선 최고의 엘리트였고,조선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들이었다. 반면 실무관청 관리들은 전문성을 띈 기술자에 가까웠는데, 조선후기로 갈수록 고위사대부들과 이들 전문직들 사이에는 명암이 갈리게 된다. 전문직에 해당됐던 역관이나 화원, 의원, 관상감 명문가들이 등장했고, 엘리트나 상층 지배층은 될 수 없었지만, 전문성을 인정받고 활용해서 명성과 부를 누릴 수 있었다. 또 이들은 조선의 그 누구보다 앞서 변화를 수용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새로운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반면 최고의 엘리트요, 조선을 이끌어갔던 사대부관료들은 성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대의 흐름에서 낙후되고 보수화돼갔던 것이다. 관청들이 즐비하고 관리들이 오가는 육조거리가 눈 앞에 그려졌다. 위엄과 체통을 앞세우며 가마를 탄 고위관료들이나,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였을 하급관리들..지금 그 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정부종합 청사는 600년 이상 맥을 이어온 관청의 광화문시대, 비록 지금은 조선시대보다는 많이 퇴색했지만 조선을 이끌어왔던 그 영예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중앙에 집중됐던 조선의 특성상 한양=조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양의 탄생 은 실질적으로 관료를 통해 통치됐던 조선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정책이 집행되고 실행됐는지 그 운영방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유학으로 무장된 사대부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뇌의 역할을 했다면, 실무관청의 관리들은 손발이 돼 조선을 추동해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정부에서 도화서까지 관청으로 읽은 조선 오백년사 라는 이 책의 소제목은 상당히 적절했다.
오래된 수도 한양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권력과 명예, 재물과 출세가 교차하는 곳에서지식과 예와 덕, 음률과 바느질, 의술과 붓질로 국가를 빛낸 이들국왕을 정점으로 관리 한 명 한 명이 모여 이뤄낸 조직은500년의 역사를 이끌어온 힘이었고다른 역사와의 차별성을 이뤄낸 조선만의 능력이었다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모든 기술과 예술의 정점은 한양에서 이뤄졌고관리들은 전문가적 자질뿐 아니라 덕망까지 겸비해야 했다오늘날 대통령이 취임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정부기구 개편이다. 신新정권은 조직 개편을 통해 나라를 정비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공포한다. 바로 새로운 집권자 혹은 내각의 첫걸음이다. 국민은 이로써 새로운 정권의 앞날을 가늠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태조대부터 순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정부기구는 큰 틀의 변화 없이 500년을 이어져 내려왔다. 조선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정부기구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조선의 정부기구를 통해 역사를 되짚어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양의 탄생 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조선 역사를 핵심 관청을 통해 다뤄보겠다는 것이다. 한양의 거리는 의정부와 육조로 대표되는 주요 관청이 들어섬으로써 발달했다. 그 후 육조거리라 불리며 정치·행정의 심장이 되었다. 이때의 육조거리가 지금의 광화문 세종로로, 지금은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서울청사, 서울지방경찰청, 주한미국대사관 등 여러 중추 기관이 들어서 있다. 한양을 탄생시켰던 관청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중심 정부기구였던 의정부와 육조를 비롯해 인사권을 행사했던 비변사나 제례를 담당했던 봉상시, 천문 관측을 주 업무로 삼았던 관상감 등 한양 관청의 역할과 역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또 그곳에 소속되어 일했던 공무원들의 조직도 및 품계 등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다루기도 한다. 이로써 이제껏 무심히 바라봤던 서울이, 세종로가 마법처럼 새로운 의미를 띠고 다가올 것이다.
머리말
1장 의정부와 육조, 왕과 함께 통치한 최고의 권력 기관 |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2장 비변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다 | 배우성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3장 규장각, 국왕의 글이 빛나는 곳 |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4장 봉상시, 예의 나라에서 국가 제사를 총괄하다 | 이현진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
5장 주자소와 교서관, 조선의 지식 권력을 창출하다 | 노경희 울산대 국문학부 교수
6장 내의원·활인서·혜민서, 백성을 살리는 덕德을 펼치다 |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7장 상의원, 왕실의 보물창고를 지키는 이들이 갖춰야 할 자질 |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8장 장악원, 모든 음률을 주관한 예술의 정점 | 송지원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9장 관상감, 하늘에 관한 지식과 일을 다룬 전문가 집단 |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10장 사역원, 화려한 외국어 실력의 소유자들 | 정승혜 수원여대 비서과 교수
11장 도화서, 조선 최고의 화가들이 화폭에 담은 세상 |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