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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을 감상하는 법 ‘한옥’이라고 하면 흔히 조선시대의 양반집, 즉 사랑채, 행랑채, 안채 등을 갖춘 일련의 단층 기와집을 떠올린다. 그러나 한옥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살림집이 한옥의 전부는 아니다. 성당, 절, 향교, 서원 등 다양한 용도로도 한옥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잠깐, 한옥성당이라고? 언뜻 생각하기에는 성당과 한옥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강화도에 간다면 한옥으로 된 성당을 볼 수 있다. 성공회 강화성당대문채 성당 외부 성당 내부 성공회 강화성당은 겉으로는 사찰, 안으로는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이라는 독특한 건물이다. 성공회의 현지 문화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시도지만, 사찰의 일주문(一柱門)과 불이문(不二門)을 모방한 문 안의 문이라는 독특한 구도는 그 한계를 보여준다.“당시 사제들이 조선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대체로 실패한 듯 보인다. 안타깝게도 성당을 마주할 때 경건함보다는 답답함이 앞선다. 마당다운 마당이 없어서다. 한국의 건축은 마당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축과 비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전체적인 아름다움과 경건함을 성취해 낸다.(아마도) 서양에는 마당이라는 공간이 없으니, 성당 건축을 주도한 주교나 사제가 이를 고려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p. 59]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성당 외부 가운데 칸을 높여 종탑을 대신한 문간채 강화도의 또 다른 한옥성당은 강화 온수리 성공회 성당이다. 일반 신도가 중심이 되어 건축했기에 규모는 작지만 신앙을 담는데 굳이 외부의 치장을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내적 확신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한옥의 용도는 살림집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한옥 24채 중 17채가 살림집이다. 아마도 한옥을 구경하러 가면 그 집이 그 집 같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그런 것이 원인이 아닐까? 여기에 우리가 건축물을 겉모습만으로 보는 경우가 많으니. 하지만 저자는 한옥은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겉모습을 중시하는 다른 나라 건물과 달리 한옥은 사는 사람을 중시한다. 때문에 한옥을 제대로 보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바라기도 하고, 방에 앉아 머름(문턱보다 높은 창턱)에 팔을 얹고 마당도 내다봐야 한다.” [p. 211]아! 이걸 몰랐으니 한옥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수 밖에. 운조루의 누마루사진출처 :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p. 271 예를 들어 보자. 저자는 전라남도 구례의 운조루(雲鳥樓)에 조선 선비의 로망이 숨어 있다고 한다. 운조루는 “넓은 대지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여 개방적으로 짓는 전라도 한옥과 높이를 강조한 경상도 한옥이 잘 조화를 이룬 건축이다. 영남 사람으로 호남에 뿌리내린 건축주 유이주(柳爾胄, 1726~1797)의 삶이 녹아 있는 셈이다.” [p. 267]운조루의 중심인 누마루에 앉아 사랑채 주변에 심은 소나무, 대나무, 매화 [세한삼우(歲寒三友)]와 더불어 누마루 난간에 새긴 연꽃을 만끽하다 보면, 유유자적(悠悠自適) 하는 고고(孤高)한 선비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건축주도 이를 위해 굳이 누마루 난간에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을 새긴 것이 아닐까? 연암 박지원의 <하풍죽로당기(荷風竹露堂記)>에“새벽이면 촘촘히 숲을 이룬 대나무에 이슬이 구슬이 되어 점점이 맺히고, 아침이 되어 난간에 기대면 맑은 바람이 불어 셀 수 없는 연꽃의 향기를 실어 온다. (중략)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손님과 함께 누마루에 올라 달빛 아래 깨끗함을 다투는 나무를 살핀다. 이제 한밤중이다 주인이 휘장을 드리우고 매화와 함께 야위어 간다.” [pp. 272~273]라는 글이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운조루의 누마루에는 유이주 뿐 아니라 조선 선비들의 일반적인 로망이 잘 녹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한옥 디자인의 핵심, 비대칭 “건축 디자인의 기본은 대칭이다. 이는 서양 건축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동양의 중심이라고 하는 일본과 중국의 건물도 크데 다르지 않다. 건축물만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거의 모든 물건이 대칭을 기본으로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연이 보여주는 디자인 역시 대칭이다. 때문에 디자인에서 대칭은 매우 오래된 전통이며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한옥에는 대칭이 거의 없다. 대웅전이나 근정전같이 의식을 행하기 위한 권위건물이라면 대칭으로 짓지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라면 대칭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p. 233]여기에는 다른 나라의 건축과 달리 한옥이 민초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된 구들을 장착했다는 점이 큰 작용을 했다. “구들이 안채 옆으로 붙으면서 한옥의 외형은 매우 독특해지는데, 일반 부엌을 건물에 붙여 짓게 되면 건물은 ‘부엌-방’의 형태가 된다. 이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한 건물은 도무지 대칭이 될 수 없다.” [pp. 239~241] 이용욱 가옥대문채사진출처 :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p. 232 안마당에서 바라본 곳간의 벽면사진출처 :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 pp. 236~237 이러한 비대칭을 전면으로 내세운 한옥이 바로 전라남도 보성군 강골마을 이용욱 가옥이다. 들어가는 대문채부터 대칭을 포기하고 있다. 한옥을 테마로 하는 1박 2일의 여행코스 한옥에 관심이 있고 여행을 좋아한다면, 이 책의 ‘1박 2일 추천 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는 24곳의 한옥과 그 주변의 볼만한 곳을 묶어 여행코스로 만든 것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여행>이라는 책 제목에 가장 부합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현학적인 전문용어를 몰라도, 불타는 소명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한옥을 즐길 수 있다. 그저 편안히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되니까.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전통 한옥 vs 다감한 여인의 모습 전통 한옥사랑을 이야기하듯 전국 24곳의 개성 넘치는 전통 건축물들을 전해듣다우리에게 전통 한옥은 아무래도 남성적 이미지가 강하다. 누마루에서 턱수염을 쓸어내리는 선비 정도가 될까?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한옥의 내면 깊숙이 숨은 다감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모르고 지나친다면 한옥과 사랑에 빠지기 쉽지 않다. 여인을 닮은 한옥은 자신에게 진솔한 애정을 보여 주는 이들에게만 제 속살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전통 한옥을 보는 눈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온전히 받을 수 있기를.한옥 연구가로 활동하고, 한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한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옥 목수일까지 익혔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 민족문화나 동양철학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친근하고 아름다운 글이 되도록 노력했다. 책에는 저자가 2년간 소중한 인연을 맺은 24곳의 전통 건축이 모두 들어있다. 24곳 중 17곳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살림집으로서의 한옥이다. 미처 깨닫지 못한 한옥의 색다른 디자인에 놀라고, 독특한 분위기에 어깨를 들썩이게 될 것이다.24곳 중 나머지는 성당, 절집, 서원 등 전통 건축을 종류별로 하나씩 선정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어떤 전통 건축물을 만나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한옥들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으므로 한옥 기행을 나선다면 그곳과 가까운 여행지를 일정에 넣어보자. 건축 기행에 어우러지는 휴양ㆍ문화ㆍ역사 기행이 여행의 기쁨을 배로 더해줄 것이다.
들어가며
1 서울/경기도
여경구가옥_ 꽃담에 남은 사상의 흔적
정용채가옥_ 아름다운 행랑채의 정체를 밝히다
성공회강화성당/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_ 한옥식 성당의 미래를 상상하다
칠장사_ 마당에서 깨달음을 얻다
운현궁_ 한옥, 역사를 품다
2 충청도
김기응가옥_ 은유의 공간을 들여다보다
최태하가옥_ 하늘과 맞닿은 한옥
김기현가옥_ 한옥의 여성성을 읽다
추사고택_ 추사, 한옥과 통하다
결성동헌_ 동헌, 스캔들이 터지다
3 전라도
몽심재_ 한옥 정원, 신선을 꿈꾸다
김동수가옥_ 공간의 향연에 빠지다
강골마을 이용욱가옥_ 비대칭 한옥, 디자인의 진수를 보다
도래마을 홍기응가옥_ 한옥, 리듬을 타다
운조루_ 조선 선비의 로망을 만나다
4 경상도
옻골마을 백불고택_ 한국의 미로 거듭나다
향단_ 세상의 중심을 꿈꾸다
병산서원_ 건축, 자연이 되다
남흥재사- 막사발을 닮은 건축
정온선생가옥_ 영광과 좌절, 숙명을 끌어안다
일두고택_ 틈으로 완성하다
밀양향교_ 은밀한 세상으로 들어가다
5 강원도/제주도
왕곡마을_ 태고의 집을 만나다
성읍민속마을_ 바람의 땅에서 한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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