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세상 문고본 시리즈를 좋아해서 구미 당기는 주제가 있으면 구입해두곤 한다. 사둔 지 오래 되었는데 이번 학기에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강독하고 있어서 의지를 내어 꺼내들었다. 아렌트 특유 어려운 문체로 원전을 읽다가 그 내용을 잘 재구성해 동시대인 말로 이해하기 쉽게 요약, 설명해주는 이 책을 읽으려니 비교적 이해가 잘 되었다. 이번 학기에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과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동시에 읽어나가면서 민주주의 체제와 공화주의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최근 생긴 질문들을 강의 시간에 여쭤봤는데 그때 들은 답변과 이 책 설명 맥락이 비슷한 부분들이 있으니,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아도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1. 공론영역에서 담론(논의할 만한 주제)은 누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정하나? 의문이 생긴 이유는 고대그리스 폴리스와 달리 현대에는 시공간 한계 때문에 모든 이슈를 공평하게 다루기 어려우므로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말로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설득을 위한 경쟁 구도가 조성되곤 하기 때문에 비교적 말 잘하는 연설가나 웅변가(데마고그) 목소리가 커질 위험이 있고 발언자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발언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아렌트는 안전장치를 제시했나?2. 공론영역에서 말을 하지 않게 되는 메커니즘은 어떠한가? 정치에 관한 의사소통 과정에서 합리보다 정서가 지배하는 분위기(이를 테면 정체성에 관한 정치적 논쟁이 붙었을 때 정서적으로 불편해지는 경험, 반박을 당했을 때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여 감정적으로 대응하곤 하는 경험)가 상존한다. 그리고 나의 의견이 공동체에서 인정과 존중을 받으리라는, 그들이 들어주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말을 할 수 있는데 여러 번 거절감을 경험했을 때 무력감이 생겨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길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의지 내어 누구나 편안하게, 자유롭고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공론장을 보장하고 만드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저자는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철저히 구분하고자 했던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에 관해 그 이유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아렌트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 사적 영역/공적 영역 구분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분석하고 있다.중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인 것 이곧 사회적인 것 으로 잘못 번역된 후 둘 사이 의미 혼동이 왔다.아렌트는‘사회주의자’ 맑스에 대해 내내 비판하고 있다.자본주의적으로 개인 재산을 축적하게 된 역사적 맥락에서 맑스가‘노동’(경제, 삶의 필연성)에 힘을 실어논의하면서 노동이인간 조건을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영역들인 ‘작업’, ‘행위’를 잠식했고 현대인이 그러한 활동들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듯하다. 인간답게 살려면 노동뿐만 아니라 작업과 행위를 되찾아야 하며, 특히 정치적 공론영역을 확보하고 거기서 ‘말과 행위’로 개인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인간의 조건” 핵심 메시지라고 이해하며 읽고 있다. 인간은 ‘시작’할 수 있는 존재로 탄생한다. 공론영역은 개개인의 다양한 인격인 복수성을 존중하는 영역이므로 개인은 자신의 말과 행위로 인격과 의미를 드러낸다. 아렌트는 유대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가 생애 내내 ‘전체주의’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일 테다. 아렌트는 당시 유대인이 공론영역을 잃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정치적 인간은 쏘온 로곤 에콘, 즉 말을 사용하는 인간의 모습과 직결되어 있으며, 정치적 태도란 끊임없는 대화 과정에 자신을 놓는 것을 말한다. 정치는 말을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다. 말을 중지시킬 때 정치는 종료된다. 따라서 말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항상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정치요 인간사다.” 32쪽.개인적으로 ‘실존의 미학’에 대해 관심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고 있어서 나에게는 저자가 아렌트를 따라 정치적 판단의 예술적 면모를 유비 관계로 보고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어제 단순 인용해 올린 부분 만으로도 벌써 읽으신 분들의 문제제기가 있어 내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여기 자세히 정리해 남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번 학기에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은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아렌트가 어떻게 해석했는가, 어떻게 아렌트는 칸트가 예술 영역에서 언급한 ‘판단’이라는 능력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학자 중에는 아렌트가 칸트를 오독했다고 보기도 한다고 읽었다, 더 공부가 필요함). 어쨌든 “예술로서의 삶”을 읽으면서 실존의 미학을 논의했던 여러 학자가 예술과 삶을(혹은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유비관계로 보면서도 구분을 하고자 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연관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같게 볼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진리” 저자가 독자 이해를 도우려고 유연하게 끌어온 로스트로포비치와 카잘스 연주 스타일 비교 사례를 읽고 있으려니 나는 공감이 잘 되었다. 클래식 연주 듣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직관적으로 악보를 연주로 구현하는 작업은 예술가의 연주 기술(작업, 혹은 개방된 공간에 글쓰기)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연주(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성향이나 인격 드러남, 이야기로 물화하면서 글쓴이 고유 해석 반영)와 동시에 드러나는 예술가의 인격과 개성 차원(행위) 양쪽에 걸쳐 있지 않느냐는 평소 의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정치적 의견은 한편으로는 의견을 제출하는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청자를 향해 표명된다. 즉 청자의 존재가 중요하다. 정치적 의견은 궁극적으로 청자의 동의를 기대하며 이로써 행위의 조정, 나아가 공동 행위를 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견은 청자의 의견과 입장을 대표할 만한 것으로 청자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야 청자가 그 의견에 동의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볼 때 정치적 의견의 타당성 문제는 곧 그것의 대표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의견의 타당성은 대표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성의 문제다. 타당한 논증으로 확인되는 진리는 다수의 의견을 대표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으려면, 그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판단의 대표적 성격이다. 판단의 대표성은 편파성을 떠나 불편 부당성을 확보할 때 가능하다. 어떤 판단이 특정한 이익을 대변할 때, 그 판단은 해당 이익 관련자에게만 대표성을 가질 뿐,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다른 사람한테서는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판단은 공적 영역에서 모두에게 제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의 이익에만 편승해서는 일반적인 동의를 얻기 어렵다. 정치가가 일부의 이익에 편승해서 자신의 이해 관계를 따질 때, 그는 추해 보인다. 추하다는 판단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판단과는 다른 형태의 것이다.“ 94-95쪽.상술한 의문에 대한 힌트를 이 부분에서 얻을 수 있었다. 저자는 플라톤 이래 철학 논의를 가져와 정치 와 진리 를 구분하고 있다. 플라톤(이데아)식 진리 는 옳음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지만, 정치 영역에서 그러한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이 문단은 아렌트나 저자의 생각이 아닌 나의 해석임을 밝혀둔다. 최근 내가 청중 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1. 클래식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연주자는 연주할 때 청중을 고려할 가능성이 높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 공연 후기를 열려 있는 이 블로그 공간에 남기면서 잠재적 독자인 청중을 염두에 두기 시작하니 그들을고려하며 글을 쓰는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적으로 열려 있는 영역에서 말과 행위는 청중(들어줄 사람)을 전제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말과 행위를 하는 자는 그 청중이 심지어 내 판단에 따른 의견에 ‘공감하며 호의적으로 들어주는 청중’이기를 기대하기까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인정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인간은 굳이 말과 행위를 하려고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행위에 대해 말로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은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그 말에 설득을 당해 거기 걸맞는 반응을 보이리라 기대하리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기반으로 아렌트는 정치에서 ‘판단’이 차지하는 위치를 논의하고 있다. 아래 사례에서 저자는 독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치 사례를 ‘미추’라는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용어를 활용해 표현하고 있다. 아렌트가 칸트의 논의를 가지고 올 때 집중하고 있는 용어는 ‘공통감(각) common sense’이다. 공론영역에서 다수 인간이 비슷한 귀와 눈 등 감각기관을 가지고 같은 상황을 듣고 보았을 때 주관적이지만 보편타당하게 판단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개인은 다양하지만 공론영역에서 다수 인간이 공통감에 기반한 판단을 활용해 개인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공공성을 지향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를 테면 한 사람이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폭력 당하고 있는 상황을 여러 사람이 똑같이 보고 들었으면 그 상황에 대한 진술이나 그 사실에 따른 판단이 비슷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정치적 발언이 설득력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정치적 의견이 인간의 복수성에 기초한 것이며, 여기서 나오는 다양성을 일괄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 준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따라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인간의 정신 능력인 취미에 의한 판단 기능과 흡사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견을 만들어내고 평가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이때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고 평가하는 인간의 정신 능력을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판단력의 활동 결과를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판단력의 산물인 판단과 의견은 동의어처럼 취급될 수도 있다.우리가 어떤 정치적 사태를 경험할 때, 경험 내용은 우리의 생각 속에 개념적으로 정리되는 과정을 갖는다. 이 개념적 정리 과정에서 정치적 사태의 직접적 영향력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갖게 되며 사태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개념화되어 우리의 의식 속에 재현된 사태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 평가 과정에서 우리의 판단력이 의존하는 것은 진리성이나 도덕성이 아니다. 도덕성도 진리성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고 단일한 준거에 따라 평가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서 판단력이 의존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동체 감각이다. 예술 작품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 남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소통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이러한 소통 가능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이는 상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상식이나 공동체 감각은 모두 한 공동체 내부에서만 타당성이 인정된다는 제약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개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 감각이 인간에게 하나의 감각으로 주어져 있고, 나아가 다양한 공동체 그 자체가 인간 공동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인간됨이라는 근본 사실을 통해 정치 판단이 일반성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개인의 이해 관계나 정치적 사태가 주는 직접적 영향력에 휩쓸리지 않을 때, 판단은 불편 부당성을 지니게 된다. 또 판단 과정에서 공동체 감각에 의존하여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상상력을 통해 생각함으로써 판단은 확장된 심성에 의한 확장된 사고 형태로 제시된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정치적 의견의 대표성이 담보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사적인 이해 관심을 초월하여 사고의 일반성을 획득하는 데 있다. 사적이고 지역적인 좁은 이해관계를 초월함으로써 판단은 일반적인 동의를 획득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다.“ 96-97쪽.원전을 이렇게 에센스로 2차 가공한 책에 대한 의견이나 평가가 분분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렌트 논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인간의 조건"에 관심이 생기는 독자라면 함께 읽어도 나쁘지 않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미 아렌트나 공론 영역에 대해 논의하는 여러 학회에서 당신의 주장이 하버마스식 해석 이라는 평가를 자주 들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 쓰는 책 리뷰들은 지면과 글쓴이 역량 한계 상 내게 의미 있는 부분을 위주로 내 해석을 가미해 단순화 서술한 내용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정치사상을 꾸준히 탐구해온 소장 철학자가 아렌트의 학문적 성과를 기반으로 정치는 진리의 영역인가, 정치와 진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주제로 하여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시민의 정치 참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등에 대해 다룬 책. 정치와 진리라는 주제가 제시하는 문제의 핵심과 정치 사상적 연관들을 점검하고 있다.
1. 인간적 삶의 조건과 정치
정치의 출발-인간의 복수성
정치 행위와 언어
정치적 인간과 쏘온 로곤 에콘
2. 인간은 정치적 동물인가, 사회적 동물인가
고전적 의미의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양자의 혼재성-로스트로포비치와 카잘스
인가은 정치적 동물이다
3. 정치와 진리
철학으로 접그한 정치-플라톤의 정치철학
누가 왕이 될 것인가-동굴 이야기
정치적 삶과 철학자
정치는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
4. 정치가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
사회적인 것을 위한 합의
정치적 의견의 타당성, 대표성
타당한 의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정치를 책임지는 시민
5. 시민 연대와 권력
시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세계적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법, 폭력,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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